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드로스 3세 (문단 편집) === 사생활 === 아내를 여럿[* 모두 [[아시아]] 계통이다.][* 물론 중동/중앙아시아의 코카소이드 [[백인]]이어서 '''인종적으로''' 광범위한 차이는 없다.] 두었다. 첫 번째 왕비는 [[박트리아]] 부족장의 딸인 [[록사나]]였는데, 록사나와 결혼한 이유는 아마 [[다리우스 3세]]의 장녀 스타테이라 2세[* 또다른 이름은 [[바르시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막내딸 파리사티스 2세와 결혼한 것과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록사나와 관계를 맺어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4세]]를 두었으나 일생 대부분의 시간을 원정에 쏟아부었고, 아들이 아직 태어나기 전에 요절했으니 함께 했던 시간은 극히 짧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알렉산드로스는 적장이었던 로도스의 멤논의 아내였던 바르시네를 후궁으로 삼아 또 다른 아들도 두었는데 이름은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 역시 그가 죽은 뒤 등장한 [[디아도코이]] 내전 중에 [[카산드로스]]에게 독살당한다.] 이들 이전에 캄파스페라는 여인에게 푹 빠졌다고도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어릴 적부터의 친구이자 최측근이던 [[헤파이스티온]]은 흔히 알렉산더의 동성 연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 연애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그리스/동성애]] 문서 참조.]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당시로선 작은 키에 외모도 평범한 편이었고 오히려 헤파이스티온이 더 키도 크고 잘생겨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가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박살내고 그의 어머니 시시감비스와 아내 스타테이라 1세가 있는 막사에 들어왔을 때 다리우스 3세의 어머니와 그외 일가는 '''[[헤파이스티온]]'''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인 줄 알고 그 앞에 엎드렸다는 얘기가 있다. 헤파이스티온이 정말로 그의 연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알렉산드로스에게는 그 누구보다 절친한 친우이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족과 같은 사람이었다는 점은 변치 않는다. 헤파이스티온이 사망할 당시에 알렉산드로스는 엄청난 슬픔과 좌절감에 사로잡혀서 헤파이스티온의 건강을 돌본 의원을 죽이기까지 했으며, 죽은 헤파이스티온을 기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거대한 기념물들을 건축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또다른 동성 연인으로 유력한 인물은 페르시아 출신의 미소년 환관이었던 [[바고아스#s-2]]였다. 그는 외모가 아름답고 가무에 능하여 알렉산드로스의 총애를 받았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군대를 이끌고 인도를 떠나 게드로시아 사막을 횡단한 후에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용 경연이 열었는데, 당시에 바고아스가 아름다운 춤을 추어 우승하고 덤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키스]]를 나누었다고 한다. 바고아스는 관련 기록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심지어 바고아스를 주인공으로 한 《Persian Boy》라는 소설도 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는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 사랑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그의 성 정체성은 [[양성애자]]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한 작가는 '''[[호메로스]]'''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일리아스]]》를 >“모든 군사적 덕성과 지식을 담고 있는 완벽한 보물” 이라며 단검과 함께 베개 밑에 간직했다고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가 전한다. 전장에 나가면서도 호메로스의 책을 지참했으며 배개 밑에 《일리아스》를 놓고 함께 잤다고 한다. 아시아 원정중에도 《일리아스》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알렉산드로스가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원정과 삶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